[book] 인문학으로 콩갈다 by 박 연

parkyun

최근 진도가 잘 안나는 책들만 읽어대서 지친 내 뇌를 쉬게 할겸 3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작은 책을 펼쳤다.
앞서 소개한 ‘박웅현’ 작가/광고인의 딸인 박연이 쓴 ‘인문학으로 콩갈다’.

연이양이 짧고도 긴 19년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삶에 끼친 영향력과 그로인한 가치관을 담은 에세이집인데 공부, 교육, 부모와의 관계, 미래에 대한 방향등 그 나이때에 으레 가지게 되는 고민들과 현실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나가는데, 이거 십대가 쓴 책이라고 가볍게 대해선 안된다.
초반 가족소개의 글은 십대의 유쾌발랄함을 강조하는 의도가 보여서 내게는 좀 유치하게 느껴졌는데 곧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책을 덮을때까지 재밌어진다.
여기서 재밌다는 의미는 웃겨서 재밌다는 그런 1차적인 감상평이 아니라 이 어린 작가가 글을 풀어나가는 스토리 텔링이 재밌다는 뜻 이다.
왜 재밌는 이야기도 재미없게 전달하는 사람이 있고 재미없는 이야기도 살리는 재주가 있는 이야기꾼이 있듯이 작가들도 그들의 역량에 따라 책의 재미가 달라지는데 일단 연이양은 독자들의 시선을 이끌고 가는 필력을 가지고 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나 보다.

연이양은 자신의 경험으로 느낀 한국과 미국 교육의 차이점 및 교육을 대하는 가치관의 차이점을 제법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하는데 학원을 ‘감옥’이라 하고 학생들을 ‘죄 없는 죄수들’ , 그런 환경에 아이들을 몰고 가는 어른들을 ‘밴드웨건을 탄 어른들’ (남들이 하는거면 왠지 무조건 따라하는 줏대없는 어른들을 칭하는) 이라며 그림까지 그려넣는 이 당돌한, 어리지만 제법 발칙한 아가씨의 글에 요즘 유행하는 표현처럼 매우 시원한 사이다 한 잔 한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릇된 과잉 ‘교육’에 대한 고발에만 초점이 맞춰진 건 아니다.
연이양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교육을 비교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책에서 무게를 두는 것은 바로 자신의 완전하진 않지만 옳바른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나눈다.
객관적으로 보면 연이양은 그 또래의 아이들보다 우월한 환경에서 태어났고 자랐기 때문에 보통 아이들의 현실과 비교하자니 좀 아이러니 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아빠는 유명한 creative director이고 책을 몇권 낸 작가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있어 보이는 집안이기에 어려서부터 유학생활이며 다양한 문화생활, 해외 여행까지 두루두루 경험할 수 있었기에 사실상 국내파라기 보다도 해외파의 느낌이 더 많이 온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연이양이 가진 것 들 중 독보적으로 단연 눈에 띄는게 하나 있는데 바로 ‘남다른 부모님의 가치관’ 이다. 이게 연이양이 가진 것 중 최고로 값지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이기에 상당히 부럽기만 하다.
박웅현이라는 창의력 넘치는 사람의 옳바른 교육관과 삶에 대한 열린 가치관을 부모로서 자식에게 넘겨줬을때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고 박연은 그 영향력의 온전한 결과물이 되어서 이렇듯 자신의 가치관과 삶을 해석한 책을  펴냄으로서 아빠의 가르침에 화답을 하게 된 것이다.

박연양의 책에는 아빠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지향하는 부모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상당히 인상적인 책이 되어 버렸다.

수단 방법 상관없이 그저 자식들의 명문대 입학에만 초점을 둔 한심한 부모들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인데 박웅현, 박연 부녀의 소통 방법이 세상에 더 많이 노출이 되어서 진정한 자녀교육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조금이라도 변화가 시도 된다면 정말 이상적일 듯 하다.
내가 내린 이 책의 결론은 ‘행복한 삶’의 방향이다.
연이양은 책에 이런 글을 썼다.

“공부는 왜 하는 걸까? 똑똑해지기 위해서?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 그렇다면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결국에는 행복하기 위해서 아닌가?”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글을 남긴다.

“아마도 삶은 순간들의 합이겠지”

저 글귀는 박웅현 작가의 책에도 실린 글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부녀가 가진 가치관의 연결고리라고 볼 수 있겠다.
너무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투자한다는 심정으로 산다. 현실적으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행복은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행복은 명문대에 갔다고,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에 다닌다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결혼을 했다고 저절로 따라오는 결과물이 아니라 평생을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때그때 찾아서 누려야 하는 것이지 인생의 목표를 하나씩 이룰때까지 미룰 수 있는게 아니라 생각된다.
좋은 학교나 직장은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수많은 목표 중 하나이고 달성 했을때 성취감을 느끼는것이지 행복의 결과물이 아닌 것이다.

부모들이 박웅현씨처럼 자기 기준, 욕심이 아닌 온전히 자녀의 행복과 공부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면 자녀들이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줘야 하는 복제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엉망진창인 ‘교육’ 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아무생각없이 기계적으로 공부하던 삶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상상력을 맘껏 펼쳐 좀 더 풍부한 삶을 살게 될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이상적이긴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진지하고 무게감이 느껴진 책 이었는데 결정적으로 빨리 읽히고 재미도 있다.
똑소리 나는 학생인데 책에는 불필요한 잘난척은 최대한 자제하고 자신의 지식을 거부감없게 나열해서 낯선 주제들도 낯익은 듯 다가온다.
매력있는 책 이었다.